2011. 2. 21. 15:44ㆍ일반산행/제주도·관광 여행
성읍민속마을
중요민속자료 제188호. 제주시 남동쪽 34㎞, 표선리에서 북쪽으로 8.8㎞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비교적 높은 지대인
해발 125m의 제주도 중산간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1984년 문화공보부로부터 민속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410년(태종 10) 성산읍 고성리에 있던 정의현청(旌義縣廳)이 1423년(세종 5) 현재의 성읍리에 옮겨진 이후 군현제가
폐지된 1914년까지 약 500년 동안 군정치소(郡政治所)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1826년(순조 26) 성 안에 큰 화재가 발생했고 4·3사건(1948) 때에는 서문 밖 민가가 거의 불타버렸지만 19세기초의
건물을 중심으로 제주도 풍물과 마을모습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돌·진흙·초가지붕으로 된 300여 채의 민가를 비롯하여 향교, 정의현청이었던 일관헌(日觀軒:제주도 유형문화재 제7호),
성터, 돌하르방, 연자매[硏子磨] 등이 있는데. 육지와는 다른 독특한 평면구성과 구조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정의향교
에는 명륜당·대성문 등이 있으며 15개의 송덕비가 열지어 세워져 있다. 일관헌은 지금의 군청에 해당하는 곳으로
정의현감이 집무하던 청사이며, 그 옆마당에는 거대한 연자매가 있다.
1423년에 쌓았던 정의성은 이끼 낀 돌담이 되어 일부만 남아 있으며, 이 마을에 돌하르방 12기가 있다. 이 마을은 한라산을
조산(祖山)으로 삼고, 마을 북쪽의 영주산을 진산(鎭山)으로, 마을의 남부 중앙에 있는 남산봉을 안산(案山)으로 하며,
천미천이 반달형으로 흘러 남산봉 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읍성은 천미천의 반달형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풍수지리적
으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과 행주형(行舟形)의 형국이라 하여 방어에 유리한 지역이며, 사람과 재화가 많이 모여드는
땅으로 여겨졌다. 성내에는 관아를 중심으로 동서길과 남문로가 교차하며, 이를 기본으로 해서 소도로망이 구성되어 있으며 가
옥들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똑바른 길은 충파(衝破)라 해 좋지 않다 하여, 모든 길은 구부리고 굴려 전부 활처럼 휘어져
있다. 공동문산·벌원방죽·동문앞·노다리방죽 등 길이 서로 만나는 곳에 큰 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 평상을 놓아 모임장소로
이용했다. 민가의 평면구조는 안거리와 밖거리 2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一자 겹집이며, 배치방식은 二자 모양과 모로앉은
2가지가 있다. 마을에는 중요민속자료 제68~72호인 조일훈가옥·고평오가옥·이영숙가옥·한봉일가옥·고상은가옥 등 5채가
보존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느티나무 및 팽나무(천연기념물 제161호)가 있으며, 그밖의 문화재로 정의향교(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5호)·일관헌·녹나무·돌하르방(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초가 등이 있다. 성읍민속마을에는 무속신앙처가
존속하며, 〈걸궁〉 등의 특이한 민요와 향토민속주인 오메기술(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3호)이 전해지고 있다.
주민의 반 정도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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